내가 현광이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 친구는 그 당시에 반장이었고 나는 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 그대로 '애기'였다. 나는 혀도 짧은데다가 수족이 시원치 않아 늘 남들에게 놀림을 당하였지만 산수만큼은 언제나 백 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은 별로 없지만 논리정연하고 늘 반듯하고 운동이나 공부도 잘했다. 그 해부터 짝이었던 종찬이랑 많이 친해졌고 현광과 나는 50여명의 대표가 되어 우등상을 탈 수 있었다.
6학년말 배치고사에서 학교 전체에서 나는 3등을 그는 5등을 하여 중학교에 시험을 치르고 중학교에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 600여명의 학생 중에 또 같은 반이 되어 3월에 첫 월말시험에서 그는 1등을 나는 9등을 하였으나, 그는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그는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낮에는 우체부로 일을 하였고 학업을 중단했던 종찬이도 현광이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닐 수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교 취직한 곳에 그는 우체부로 우리 회사에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2~3일에 한 번씩 편지로 혹은 엽서로 연락을 취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내가 졸업을 하거나 자격증을 딸 때마다 그는 형설지공이란 단어로 축전을 보내 왔었다.
그는 30여년을 한 우물을 파서 현재는 모회사 노조 경기도지부장을 하고 있는데 가끔 종찬이가 올라오면 술 한잔씩 하곤 했다. 이렇듯 40여년의 우정을 쌓은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다시 뭉쳤고 그는 56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우리 56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 그의 앞날의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친구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