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0일(일)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발이 아프다. 붓고, 저리고, 쑤시다. 이런 적이 없는데 하나 있는 발의 고마움만 간직하고 있는데 정작 아프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파스를 붙여 주는 그네가 아름답다. 처음으로 처가에 인사하러 가는 날인데 이게 뭐람!
장모님께 큰절을 하고 처제가 끓여 주는 삼계탕과 매운탕과 두꺼비와 고스톱과 노래방과 함께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또 하나의 일가 즉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흡족해 하는 처가 식구들을 보매 나도 이 분들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스스로 다짐을 한다.
인간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부터 생로병사로 해탈로 이어지는 윤회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겠지. 그네와 만난지 이제 50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주에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경우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그네의 말에 동의를 했고 다음주에 이사 오기로 했다. 또하나의 인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21일(월)
3주만에 탁구장에 들렀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느낌이 색다르다. 기존 멤버들이 보이지 않는다. 난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회칙 등을 만들었지만 난 취미 목적이라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들이야 매주 5회 연습을 하고 대회도 나가지만 난 내 자신을 알기에 이것으로 만족한다.
도에서 나오는 운영비와 레슨비 때문에 갈등이 있었나 보다. 여유있는 사람은 더 걷어서라도 레슨을 받고 싶어 하지만 장애인들은 한 달에 돈 몇 만원 내기 힘든 사람이 많다. 회장과 커피 한잔 하면서 대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여명의 단체가 이 동아리도 힘들다면 할 말이 없다. 초심으로 돌아 간다면 좋을 텐데...
22일(화)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물어 보니 통풍성 관절염이란다. 그리고 내과에 가서 상의해 보란다. 내 주치의에게 물어 보니 적혈구 증가증이란다. 장애인이라서 안 받아 준다고 하니까 자기에게 전화를 하란다. 해서 약을 타고 헌혈의 집을 찾았더니 역시 거부다. 혈압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이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그네와 의사의 전화가 연결이 되어 다시 들어갔고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헌혈을 할 수 있었다, 수 십년 만이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이 기쁘다. 하지만 발은 점점 더 아프기만 하다. 약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다.
음방 식구들이 찾아왔다. 매일 하던 음방을 그네와 약속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하겠다고. 그네도 좋다고 응해 주었다. 서로가 다 양보를 한 셈이다. 매일 밤 만나던 그들이었기에 아무 꺼리낌없이 자주 만나곤 했다. 해리도 수술이 잘 되어 좋아 보였다.
23일(수)
서재에 도배를 하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모두 그네의 몫이다. 이상한 것이 내 일 같지가 않다. 방관자가 된 느낌. 이래서는 안 되는데... 탁구장에서 모처럼 배코치님을 뵈었다. 고문관인 나 때문에 고생하신 분이다. 많이 늘었다면서 안 나온 벌로 다음주에 11시에 나오란다. 특별히 레슨을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저런 자원봉사 하시는 분이 있어 세상은 참 따뜻하다.
문자를 보내고 오랜만에 음방을 열었다.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여행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150mm의 비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 대 찬성이다. 무진이나 호수 등이 못 가는 것에 대하여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7명이 떠나기로 하고 내일 아침에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네는 벌써 김치며 쌀이며 옷을 챙겨 놓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살포시 안아 주었더니 빙그레 웃는다.
24일(목)
아침 7시에 삼돌은 벌써 집으로 왔다. 그 빗속을 뚫고 달려온 그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잘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특히 혼성이 같이 밤을 세운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언제나 말없는 나는 늘 조잘 거리는 인숙이의 언변에 놀란다. 한울방 가족들은 늘 2년을 한결 같다. 만나고 공유하고 듣고 이것이 끈끈한 정이 된 것이다. 줄기차게 오던 비가 안면도에 도착하니 딱 그쳤다. 하늘의 도움인가 보다.
무사히 도착함에 감사 드리며 소나무가 있는 풍경은 허울뿐이지만 그런 것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 점심을 해 먹고 7명 모두 꽃지 해수욕장에 가서 바닷바람을 마시며 사진 촬영을 했다. 바다가 주는 멋은 내게 늘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포용과 안락함이다. 가끔 세찬 파도도 있지만 예외없이 다 받아들인다. 거기엔 순서도 높낮이도 각도 없다. 공평할 뿐이다. 거기에 순응하지 못하면 낙오만이 기다릴 뿐이다. 썰물이 밀려오는 바다와 바람이 와 닿는 코 끝의 향기가 시원함을 더 해준다.
자주 여행할 만큼 정이 든 불새, 묵묵히 맡은 일을 다 하는 두꺼비 친구 청정, 가장 말을 많이 하지만 마무리까지 책임을 지는 삼돌, 나를 가장 생각해 주는 해리, 봉사정신이 투철한 윤주, 어느새 오누이로 변한 인숙이 등 모두의 셩격은 다 다르지만 늘 하나였다. 한결같은 가족이다. 우리는 밤새 먹고 마시고 놀고 어울렸다.
25일(금)
시큼한 김치에 김치찌개 하나가 밥맛을 더해 준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양보한다는 것은 아름답다. 네 것 내 것이 없이 우리 것 그것은 살아가는 세상의 일원으로서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 모든 것이 필요 불가결하다. 돌출행동 하거나 아전인수라면 단호히 배척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참된 마음일 것이다. 비록 장애우로서 시작된 방이지만 누가 우리를 장애인이라 하지 않는다. 특히 마음에서만은 비장애인들보다 넓고 깊고 아름답다.
일정을 바꾸어 황포항으로 갔다. 발이 무척 아팠지만 내색도 못하고 구경을 해야만 했다. 삼돌과 인숙이는 배를 얻어 타고 조개를 잡아 왔다. 바닷가 온 추억이 고스란히 남았다. 점심을 먹고 서울 팀과 분리하여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화성부터 비가 앞이 안 보일 정도이다. 조개를 다섯 등분하니 이것이 베품이요 화목이다. 따뜻하게 맞아 주는 그 화목이 있기에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26일(토)
여동생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항상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여동생에게 받아 보는 첫번째 문자이다. 잘 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늘 미안할 뿐이다.
발이 너무 아파 한의원을 찾았다. 통풍성 관절염이 이제 시작 되었지만 석회가 어쩌구 저쩌구 겁을 준다. 오늘부터 술을 끊어야 한단다. 오늘 진수네 집으로 가서 술 마시기로 했는데... 약을 세 재나 먹어야 한단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동거를 시작하면서 지출이 곱절로 늘었다. 아무래도 달라지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들어간다. 오늘도 가구 맞추고 약 짓고 하는데 근 200만원이 들어간다. 결혼식이 끝나면 덜 들어가겠지만 둘이 있어 좋은 것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번거러움이 있음에 많이 놀라곤 한다. 그것은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분이지만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쁨이요, 새출발 하려는 만남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