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을 설쳐 가며 티브이를 지켜 보았다. 연속해서 날아온 금빛 질주가 가슴을 뜨겁게 그리고 뭉클하게 한다. 안현수와 진선유의 3관왕 그들의 감동은 우리네 시야에서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학교 후배인 이영표의 다큐도 전해주니 오늘 아침은 여간 흐믓하지 않다.
봄은 소리없이 오나 보다. 여인의 옷자락에서 그리고 내 가슴속에서 사알짝 고개를 내민다. 휠체어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본다. 15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계절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차 보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외곽순환도로도 차들이 한가하게 달린다. 산과 들과 집들이 평화롭게 숨을 쉬는 것 같다.
모친이 돌아가신지 5개월, 싱글방 문을 두드린지 어언 4개월, 그리고 아파트로 이사 온지 3개월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이 바뀌고 많은 것이 새로워졌다. 장애란 불편할 뿐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살아 가나'는 기후였다. 밥, 빨래, 청소 등 모든 살림은 나하고 먼 이야기인줄 알았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데로 묻고, 찾고, 터득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어제 아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수암봉으로 등산을 가잔다. 내가 어떻게 가니 하니 하니까 왜 못 가냐고 되묻는다. 얕은 산만 가고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말로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들의 배려가 생각과 마음을 바꾸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도 정상에 올라간 그 산을 멀리 바라봐야 했던 그 산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생각을 바꾸어서 어제는 농구장을 찾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농구선수를 보러 안산 와동체육관을 찾았다. 작년 겨울리그에서 꼴찌를 한 신한은행팀. 거기에 한 명이 보태져서 여름리그에 꿈같은 우승을 차지했디. 거기엔 애기 엄마인 전주원 이라는 주부선수가 다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가드는 농구의 야전사령관이다.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템포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고 패스는 물론 어시스트와 슛을 모두 잘 해야 하는 그 자리 거기에 전주원이 한명 더 있을 뿐이다.
코치로 있던 지난 겨울리그에서 난생 처음 꼴찌라는 수모를 맛본 뒤 선수들과 함께 자청해 겪었던 갖은 고초도 털어놨었다. 실미도에서 가진 해병대 훈련은 기본이었고, 빨간 숯불 위 10m를 맨발로 걷는 담력 훈련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였다.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플라스틱 빨대로 생감자를 관통시키는 기이한 훈련도 했다. 차력사를 연상케 하는 믿기지 않는 훈련이었지만 선수 모두가 거짓말처럼 해냈다고 한다.
그녀는 아직도 녹슬지 않았다. 후배들이 잘하도록 이끌어 주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녀의 플레이를 보매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어제도 상대팀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플레이오프 1차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요즘 또 하나의 취미를 붙였다. 싱글방에 들어온 이후로 친구 두 명을 얻었다. 밤마다 이야기를 하며 정이 들었다. 사람을 잘 사귈 줄 모르는 내가 먼저 친구 하자며 손을 내밀었는데 두 분 모두 쾌히 승낙을 했다. 두 분 모두 같은 날 프로포즈를 한다. 나는 목하 진행중 그래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는데... 음악을 하는 그들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신다.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신다. 물론 다른 분들도 앞에서 혹은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히 음방을 꾸며 주신 강선생께 고마움을 인사로 대신한다. 그리고 파일을 보내 주신 분, 시험방송을 격려 해 주신 분 모두에게 감사 드리고 싶다. 친구들의 결실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기원해본다.
약 3000곡 다운받아서 하는 데 걸림돌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열심히 해 보련다. 하지만 프로는 되고 싶지 않다. 다만 이것이 성공한다면 장애인들에겐 도움이 될 것 같다. 노래방도 잘 안가는 내가 무엇을 알까마는 장애인의 귀가 되어주고 싶다. 장애우 클럽장이란 분이 내게 부탁을 해 와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 것이 배우게 된 동기이니 나쁠 것도 없고 이제 일주일 된 시험은 아직도 어리둥절 하게 하지만 그래도 포만감을 느낀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 보리라.
새로운 취미로 공부도 제대로 안되고 책도 제대로 못 보지만 그래도 뒤늦게 시작한 취미생활로 새 삶을 느끼게 한다. 내 33평의 공간은 그래서 외롭지 만은 않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봄소식을 내 가슴속에 전해준다. 정상엔 못 올라 가지만 등산하는 기분으로, 비록 직접 뛸 수없지만 그 선수를 생각하며, 훗날 다른 분의 귀가 되어줄 마음으로 그렇게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리라 다시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