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이별이 지나간 언저리

역려과객 2015. 6. 24. 16:00
이별이 지나간 언저리
2006.03.31

 

 

  갑자기 가수 박인희의 노래 스카브로우의 추억이란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추억 속의 스카브로우여 나 언제나 돌아 가리 내 사랑이 살고 있는 가고 싶은 나의 고향~~'  왜 인지는 모르지만 자꾸 떠 오른다.  부친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지 벌써 20일이 되어 가신다. 무엇이든 흥미를 잃어 가신 듯 하다.  연세도 있고 내가 간병하기엔 한계가 있다. 빨리 큰 며느리를 봐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시다. 그것을 못해 드리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외국여자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부친의 말씀에 올해 꼭 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옛 속담에 급히 먹은 떡이 체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내 숙명이던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7~8년전에 시작했던 개인 사업이 2년도 안돼서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쳇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오전에 대충 정리하고 오후엔 사자성어에 미쳐 버렸다. 직원들은 일 하거나 말거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는 쳇보다 더 좋은 시간 보내는 것은 없다며 즐겼다. 많은 친구들과 사귀곤 했지만 직접 만나 분은 정모에 한 번 참석 했었고, 개인적으로 만난 분은 두 분이었다. 닉네임이 마음에 들었던 한 분은 시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상 탔다고 하며, 다른 한 분은 나를 컴퓨터와 사자성어에 빠지게 한 형님이시다.


  사업 실패로 한동안 컴을 멀리 하게 되었는데 한 친구는 계속 연락이 왔고 컴을 다시 만지면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하나 만으로 일년에 서너 번 만나 점심 혹은 같이 봉사활동 하면서 그 친구를 대학에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메일을 썼고 정도 들었지만 선은 분명히 그었다. 남의 가정 파탄 안내기로 하고 돈독한 우애인지 정을 쌓아 나갔다. 스스럼 없이 그 친구도 학비 모자라면 부탁을 했고 나는 싫은 내색 안 하고 내가 힘 닿는 대로 보탰다. 6년의 플라토닉 다솜이었다. 어쩜 유뷰녀가 아닌 혼자였으면 청혼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이별의 시작이 왔다.  새해 들어 부친의 성화에 결혼 하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중매가 들어 왔다.  학교 선배이신 장애인 지부장님 주선으로 같이 봉사하던 형님의 처제를 소개 받았다.  평생 이어 가리라던 생각을 접어야 했다. 결혼하게 되면 내 배우자에게 도리가 아닐 것 같아 급기야 그만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수 일후 장문의 메일이 왔다.  자기도 마음속으로 사랑했노라 하면서 죽은 후에라도 다시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한 번 내 뱉은 말을 주워 담기는 내 성격상 용납이 안되고 그 친구와 여행 다니던 생각을 하니 가슴이 쓰리다. 손이라도 잡아 봤으면 하는 아쉬움만 간직하고... 그리고 지난 2월 초에 맞선을 보았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관에서 왕의 남자도 보고 체육관에서 농구도 보고 대부도로 소래로 대공원으로... 부친도 흡족해 하셨지만 만나는 데에도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 이별의 아픔이 컸기도 하거니와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녀와 그 가족이 빨리 데려 가라고 하는 통에 내 마음은 영 아니다. 순종은 좋지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가족이 되어 주겠다는데 얼마나 고마운가?  선배는 4월에 장애인 합동 결혼식에 넣겠다고 잘해 보라며 부추기신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만난 지 닷새만에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여자 만나지?"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여자 만나지마" 로부터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주엔 막내 제수씨께서 안 했으면 좋겠다고 또 그러신다. 남의 일에 초 치는 것도 아니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음주엔 작은 어머님이 지난주엔 외숙모님이 안 했으면 하신다. 아버지 따뜻한 밥 해 드리겠다는데 왜들 그러는지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간다. 그 좋아 하시던 아버지도 재촉을 안 하신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가족이 뭔가 모두들 잘 되길 원하고 이끌어 주고 보탬이 되어 주고 따뜻한 정을 주는 것이 가족의 울타리가 아닌가? 내가 전화를 하지 않으니 지난 주에 전화가 왔다. 이번 주에 일이 바쁘니 다음주에 만나자고 했는데 참 답답하다. 그리고 오늘 전화가 왔길래 그만 만나자고 했다.


  우정도 혼담도 한 달 사이에 다 날라 가는 안타까운 순간들이다. 내 팔자가 그런가 보다. 중이 될 팔자라고 누가 그러더니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나 하는 안타까움의 공간이 머리를 틀어 죈다. 평생의 기회가 날라 간다 해도 가족의  반대로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화요일에 모친 천도제 지내 드리고 다음 날 절을 찾아 스님의 윤회사상을 들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것을 잊고 스스로 은인자중하자고 기도했다. 지금껏 잘 참아 왔지 않은가?  하지만 이 공허 무엇으로 메운단 말인가? 두꺼비 한 마리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망우물이라도 같이 할 벗을 찾아 봐야겠다. 다시금 그 노래를 떠올린다.  내 사랑이 살고 있는 가고 싶은 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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