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길고도 짧은 이틀의 공간

역려과객 2016. 10. 17. 15:59
길고도 짧은 이틀의 공간
2008.11.10

 

 

 

  누구에게나 정초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자신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1년을 그려본다. 지난날의 과오를 넘기고 보다 활기찬 기분으로 새 삶을 영위한다. 그리고 조금씩 성숙해 가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무릇 사람이란 때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망각하며 좀 더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바램은 대부분 주관적이지만 일정한 선이 없다. 여러 지인들의 축복 속에 결혼한지 보름동안 바쁘게 지냈고 어제와 그제 이틀동안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장애인 복지론의 과제물 중에 팀을 구성하여 영화 한편을 보고 토론해서 정리하여 제출하라는 것이 있다. 지난 달에 복지관을 방문하고 이번이 두 번째 모임인데  토요일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한 명을 더 초청하였다.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친구가 내 결혼식에 온 것이다. 윤성은이란 친구다. 학교의 임원을 맡은 성은이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겸사해서 찾아 왔는데 그 이후로 친해졌고 토요일에 오라하니 용인에서 달려왔다. 정말 활달한 친구다.

 

  나까지 여섯명이 다과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아시스라는 영화에 대해서 토론하며 두 시간여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갔다. 전과 3범인 홍종두와 뇌성마비인 한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사회에서 냉대 받고 외면받는 가운데에서도 이들의 아름다움을 지켜 내려는 감독의 의도와 사회복지사가 할 이야기들을 맛나게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술 한 잔이 잘도 넘어간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 느낌 참 따뜻하다. 이 느낌이 변함없었으면 한다. 모두들 가고 성은이는 내 시험을 도와 주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려는 그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얼큰한 기운에 저녁도 안하고 친구를 보내고 아내와 고등학교 짝이었던 안양에 부친상을 당한 대병에게 찾아갔다. 거기에서 오랜만에 만난 만난 친구들도 있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백발이 되었다. 30여년은 그렇게 우리를 변화시켰지만 물 한 잔을 나누어도 여유로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끝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는 육촌이자 동창인 흥석이의 고마운 정성이 나를 기쁘게 한다. 흥석이는 그 날 신부가 너무 예뻤어요 한다.

 

  오는데 철학과 교수인 용복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미나 때문에 중국을 가서 결혼식에 참석 못했노라며 도착해서 전화하노라고 술 한잔 하자고 한다.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축하한다며 건배를 제의하는 용복이와 그 일행과 같이 거나하게 취했다. 오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와 어울린 셈이다. 이런 정이 넘치는 배려 이것이 진정한 친구요 풍요로운 친구가 아니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친께서 기침을 안 하신다. 부랴부랴 대충 정리하고 응급실로 모셨다. 수 많은 약에 의존하셨으나 기분이 좋아져 경로당에 가셔서 과음하신 모양이다. 응급처치를 하며 여동생과 매부를 불렀다. 사전 약속이 있어 부탁하고 집으로 왔다. 벌써 택시기사가 와 있었다.

 

  안양에서 동서와 처제를 만나 함께 양주에 있는 운경공원으로 향했다. 장인어른과 손위 처남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오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하늘과 산을 수 놓았고 공원 꼭데기에 있는 묘소에는 동서 등에 엎혀야 했다. 한 번도 뵙지는 못하였으나 이 사람과 백년해로 하기로 했으며 잘 살겠노라고 하며 잔을 올렸다. 그 옆에 있는 처남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묵은 숙제가 풀린 듯 하다.

 

  남자가 없는 처가를 20년을 넘게 장인과 처남의 묘소를 다니며 손질을 한 동서가 참으로 대단하다. 부모도 버리려는 지금 이 시대에 한 두 해도 아니고 얼굴도 뵙지 못했다는 장인의 묘소를 정성껏 돌봤다 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침 저녁으로 장모님께 문안 여쭌다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사람이 있다니 저런 사람을 동서로 둔 내 자신이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처제에게도 고맙다.

 

  처가댁에서 놀다 집에 오니 부친께선 저녁도 못 드시고 누워 계신다. 부랴부랴 죽을 쑤어 드리니 한 숟갈 드신다. 몇 달 전만 해도 나 혼자 했는데 알아서 척척 살갑게 대하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친구들은 효성에 감복하여 복을 주신 것이라고 한다. 결코 동의 할 수 없지만 나 보다도 부친을 먼저 챙기는 사람에게 무엇으로 다 표현하리. 훗날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즐거웠던 날들을 얼굴 마주보며 아름다운 시절을 되 뇌일 수 있는 사랑스럽고 다정한 친구이고 싶다. 길고도 짧은 이틀의 공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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