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안분지족

역려과객 2016. 10. 24. 15:22
안분지족
2008.12.21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을 맞았다. 쉴새 없이 달려온 느낌이다. 학기말 고사를 끝내니 방학도 한 셈이다. 어제 지우들과 모처럼 술 한잔을 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자주 만났는데 내 결혼과 함께 두 달만에 만났다. 술이란 모든 것을 편안하게, 안락하게 하고 망각을 가져다 준다.  한잔 두잔 기울일 때마다의 촉감이 다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만 못하다. 다른 때 같으면 2차 3차 했을 텐데 곧바로 집에 왔다.

 

  눈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은 맑다. 모두들 힘들다는데 의원들은 진흙탕처럼 싸우기만 하고 날씨마저 추워진단다. 오후에 처가댁에 가기로 했는데 운전이 서툰 나는 벌써부터 겁이 난다. 수 일전에 아내와의 다툼 이후 우리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래도 서로 양보하고, 신뢰하고, 위한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 족할 듯 싶다. 이 어려운 시기에 조금이나마 보탤 수 있는 안빈낙도요, 안분지족 아니겠는가?

 

  부친은 잘 잡수실 뿐 아니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 당신이 병을 이겨내시려고 식사도 간식도 드링크도 잘 드신다. 1년전 보다 10kg이나 더 나가셔서 맞는 옷이 없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정신을 놓지 말라고 부친과 하루에 한시간 정도 화투를 치는데 화투를 잡는 손이 예전만 못하다. 하루하루 틀리다. 잡는 손이 어눌하고 어디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잡수실라 하시고 옷 입는 손이 상당히 불편해 하신다. 아내가 사흘에 한 번 목욕을 시켜 드리지만 혼자서 하시는 일이 별로 없다. 이렇게 지켜봐야 하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밉다.

 

  부친을 핑계삼이 내 할 일을 못하고 살았다. 한울 음방도, 탁구도,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연말 각종 모임에 나가지도 않고, 임원도 모두 그만 두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죄를 지은 듯 조용하게 연말을 보내고 있다. 많이 게을러진 것이다. 작년 이맘때 피던 동백이 죽어가고 있다. 화초들이 시들하다. 지방간에 관절에 담석에 고혈압에 손가락 마디마디 안 아픈 곳이 없다 파스로 온 몸을 도배를 했다. 눈도 침침하여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쉰을 넘긴 나이에 먹는 약이 참으로 많다.

 

  그래도 우리에겐 주어진 오늘이 있고 또한 내일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 번 불끈 쥐고 일어서야 할 때이다.  부친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내 자신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내게 주어진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오늘이 동짓날 노동지다. 점심에 팥죽을 사서 부친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장모님께도 인사 드려야 한다. 그동안 못다 읽었던 책을 보자. 일전에 내가 아는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조그만 뜻을 전하니 고맙다고 전화가 왔다. 아직 할 일이 많다. 가는 2008년 조용하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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