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실컷 잤다. 아내가 만두를 사 와 칡주와 함께 마시니 금방 취해 저녁도 안 먹고 그냥 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피로가 싹 가신 듯하다. 내일이면 부친을 모시고 일산 국립 암센터에 간다. 자식된 도리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 해 보고픈 마음에 모두 합심을 한 것이다. 병간호는 아내와 여동생이 24시간씩 교대를 한다. 가족의 끈끈한 정을 새삼 느끼게 한다.
내가 팔불출인가? 어디를 가든 아내 칭찬이 대단하다. 집에서도 많은 소리를 들었는데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입 소문이 무섭다. 부친에게 지극정성이다. 당신이 암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아내에게 더더욱 매달리신다. 그럴수록 아내는 최선을 다 한다. 이것이 우리 방에서, 간병인으로부터 간호사로 심지어 청소부 아주머니들에게까지 대단하다고 놀라워 한다. 딸도 저렇게 못할 것이라면서 한 마디씩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친은 딸인 여동생 보다도 며느리인 아내에게 더 정을 쏟는다. 스스럼없이 이것 저것 해 오라 하시면 마다 않고 다 해 바치는 그 효성이 내 가슴속에 파묻힌다. 자식인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작년 이맘때는 나 혼자 간병인을 두고 지켜 봤었다. 서로에게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정이 들었다. 헌데 그 곁을 떠나야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80을 산수라 하던가? 뒤늦게 얻은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으시겠지. 옛날 같으면 오래 사셨을 연세다. 3년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셨고 병원 한 번 안 가셨는데 재작년에 기흉 수술, 작년에 골수염, 그리고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그 곳으로 가려고 하신다. 당신은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시지만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기만 하다.
뒤늦게 얻은 행복을 고이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아내를 보며 미소짓는 저 입가에 맺는 아픔의 고통이 언제나 멈춰질까? 좀더 오래도록 살고픈 것이 사람의 욕심일진데 거기에 더 덤으로 얻은 행복을 놓아야 하는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착찹할까? 그것을 생각하니 자식된 도리로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일산에 가면 좋은 소식이 있을거야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 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壽를 어찌하단 말인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 내가 ?황 아닌 방황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 새벽에 채찍질한다. 정신 차리라고.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병문안 오신 분들에게 그리고 안부를 물어오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