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예쁘게 피었던 개발선인장이 지기 시작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볼품이 없이 시들어 버렸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반드시 죽게 마련인가 보다. 매일 혼자 혹은 둘이 잤는데 부친까지 집에 계시니 활기가 차 있는 듯 화초들은 싱글벙글 웃는 듯 하다. 이제 나도 나이를 들어가나 보다. 몸이 한 두 군데 아프기 시작하더니 피로가 겹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안 아픈 곳이 별로 없다. 건강기능검사를 하고 2차 검사를 받았는데 간 수치가 높고 고지혈증 등 여러 곳이 안 좋다고 나왔다.
지난 달에 아내가 입에서 냄새 난다고 해서 스켈링을 했더니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엊그제 부친이 입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며칠 전 가슴이 답답하더니 가끔 코피도 터지고 이도 아프다. 지난주부터는 양 팔의 힘이 없더니 통풍성 관절염이 손가락까지 왔나 보다. 너무 아파 타자 치기도 힘들다. 고혈압을 먹은 지 어언 5년 그리고 관절염 약을 먹는다. 나이는 많지 않은데 벌써부터 이러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내 또한 간병을 한 후유증인지 몰라도 식은 땀이 나고 귀도 안 들리고 배가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 앞에선 안 아픈 척 씩씩한 척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일주일간 검사를 받은 결과가 어제 나왔다. 너무 늦어 수술도 안되고 양쪽 폐가 나빠 방사선 검사도 안 될뿐더러 연로하셔서 항암치료도 하기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집에 가서 편히 모시라는 뜻이다. 부친 앞에서 확인만 시켜 드린 것이다. 한가닥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환자와 보호자인 우리의 꿈이 산산조각난 꼴이다. 결국 부친을 모시고 집으로 와야 했다. 돌아 오는 길에 아내와 여동생은 흐느껴 울고 부친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출산율의 하락이라는 사회환경에 비추어 늘어난 노령기를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령화 사회가 시작 되면서 노인부양비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정부는 공적연금, 기초노령연금,기초생활보장제도 그리고 2008년도부터는 장기요양보험 등 여러 가지 정책으로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지만 현실속에는 매우 빈약하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픈 것이 사람의 욕심인데, 노인이 오래 살수록 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노인 대부분이 1차, 2차 질병을 앓고 있다. 지금 늘어나는 노인의 증가에 발 맞추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이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 나라는 건강보험이 4.5%를 걷는데 대만이나 서유럽처럼 이를 좀더 높이는 방안은 없는지 물론 국민의 대통합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비정한 현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쉰을 넘긴 나나 아내의 병도 병이지만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부친을 살리자는 둘의 언약은 비록 공수표로 돌아갔지만 다음 주에 재입원시켜드리고 돌아 가시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자고 굳은 약속을 했다.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주부터 학기말 시험인데 책을 들여다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아픈 손가락 마디마디보다 더 아픈 가슴이 나를 짓 누른다. 그래도 점심때 부친의 농담과 우스개 한 마디에 한바탕 웃을 수가 있었다. 이런 웃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뒷 맛이 씁쓸하고 날씨마저 차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