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의 일기 그리고 ..

장수마을

역려과객 2014. 4. 26. 15:56

 

장수마을
2008.04.13

 

 

 

  근 1세기 전에 군수님 댁에 계셨던 내 조부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 마을에 모과가 많아서 牧甘이라고 하셨다. 옛날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모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염되지 않는 마을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꽃과 벌 나비와 새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적한 시골은 인심 또한 후하여 38가구가 옹기종기 촌락을 이루고 수 백년을 대대로 이어졌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원인을 조사해 본적 없지만 가가호호에 80이상 되신 노인들이 많이 계신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세월을 안주삼아 지켜 온 분들이다. 이제 80이 되어 가는 부친 또한 재작년까지 1정보의 전답을 업으로 사셨으나 이사 온 이후로 시름시름 앓고 계시다.

 

 요사이 생각보다 상갓집이 많다. 올 들어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상가에 다녀오곤 한다. 우리 동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부터 작은 마을에서만 상을 당한 가구가 넷이나 된다. 네 분의 평균 연령이 90.7세이니 정말로 오래 사셨고 모두들 호상이다. 5년 전만 해도 우리 동네는 꽃상여를 꾸몄는데 요 근래에는 보기 힘들다.

 

  상을 당하면 보통 7번의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입관하고 옷을 갈아 입는 성복제, 발인할 때 지내는 발인제, 길을 떠나다 잠시 머무는 노제, 산소 쓰기 전에 산에다 지내는 산신제, 봉분을 마무리 짓고 지내는 성토제,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지내는 초우제, 그 이튿날 새벽에 지내는 재우제, 그리고 장사지내고 사흘만에 지내는 삼우제를 지내게 되는데 큰 일을 치루고 나면 상주나 그 가족들은 보통 대부분 크게 앓아 눕는다.

 

  상가 예절이 많이 간소화 되었고 상조회에 가입하여 어려울 때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것이 많다. 요사이는 곡 하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대부분 화장을 하는데 화장터가 없어 어느 때에는 나흘 장을 치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각 시마다 화장터가 한 군데씩은 있어야 하는데 모두들 필요로 하면서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고장은 모두들 결사반대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비록 한쪽 다리는 없어도 큰 일을 당하면 친구들이 나부터 찾는다. 어쩌면 그것이 고마울 때가 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찾는다. 오늘도 거의 이틀을 지새우고 아침에 돌아왔다.

 

  친구들 가슴속에 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방금 전 고맙다고 술 한잔 하자는 친구의 전화 한마디에 피로감이 싹 가신다. 그 덕분에 넉 달 이상 지속된,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기침이 더욱더 심해져 훈장으로(?) 남아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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