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을 기원하며
2002년 2월
16강을 기원하며
2002년 2월
滿 찰 만자이다. 여유롭고 가득 찼다는 기분을 좋게 하는 글자이니 그 자가 들어가면 대부분 넉넉해 진다. 만개, 만발, 만끽, 만선, 만조, 만월, 만점 등등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이 동시에 내포 되어 있다.
그제 아침과 어제 새벽에 두 편의 드라마보다 더 진한 각본 없는 드라마인 축구를 시청하였다. 하나는 산골마을의 축구 팀으로 3개월전에 만든 초등학교 축구 팀이고 또 하나는 멕시코와의 골드컵 8강경기이다.
강원도 정선의 산골 오지마을. 정선에는 초등학교 축구 팀이 없단다. 월드컵 붐을 일으키기 위해 개그맨 이창명씨를 주축으로 만들고 80년대의 국가대표 수비수인 정용환씨가 감독을 맡은 도토리 축구 팀이 탄생 하였다. 6개월 후에 일본 초등학교 팀과 친선경기를 약속하기로 하고 천진 난만한 친구들을 모아서 만든 그야말로 불모지 땅에서 출발이었다. 기본기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명제만을 던진 채 태동한 그야말로 오지에서 일어난 축구 팀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모교에는 축구부가 있었고 한 반에 1~2명씩 배치되었고 그들은 우리보다 덩치가 무척 컸다. 대부분 고아출신이라 우리는 약간의 용돈을 절약하기도 했고 쌀과 김치 등으로 십시일반 했다. 그 결과 모교는 전국 최강이 되었고 우리는 효창구장과 서울운동장을 응원차 찾아가곤 했었다.
산골아이들은 개구쟁이이다. 고기도 잡고, 콩도 구워 먹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연습시간을 잊어 버리고 감독에게 혼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에서 두시간 걸리는 문종이, 멋을 부리는 재규, 겁에 질린 골키퍼 홍원이 홍일점인 슬기. 모두가 축구는 나중이었다 . 감독은 늘 걱정이 태산이다. 훈련을 한 달 동안 한 후 감독의 후배가 감독으로 있는 서울의 신정초등학교와 시합을 가졌다. 데뷔전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도토리축구팀은 전반에만 5대0 도합 6대0으로 졌다.
80년 9월 새벽에 남북축구가 열렸었다. 그 당시 인공기도 모자이크화 해서 방송하던 시절이었다. 전반전 1대0으로 지던 한국이 후배인 정해원이 연속 두골을 넣어서 1분을 남기고 이겨서 흥분을 하였었다. 천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값진 승리. 그러나 흥분의 도가니는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이들에게 쓸쓸하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한 하나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그 당시엔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 그렇게 해 왔다. 한국 축구는 투지 하나로 아시아를 지배했었다. 솔직하게 말해 일본에 뒤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일본은 제이리그를 출범 시키면서 많은 투자를 했다. 경기장을 짓고 유소년을 조기유학 시키고 수준 높은 선수를 데려 오고 팀을 초청하고 해서 얻은 결실로 아시아를 초월하고 있다. 저 유명한 나까타 선수도 유소년에서 키워 낸 선수이고 보면 아무리 남의 나라지만 부럽기 그지 없다.
축구는 투지만 있어서는 안 된다. 체력, 지구력, 정신력, 기술, 전략, 전술, 조직력 모든 것이 복합된 종합예술임과 동시에 세계 공통어이다. 남미의 개인기나 유럽의 조직력과 체력은 관중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불러 일으킨다. 오대영이란 별명을 가진 히딩크 감독이 수난을 겪는다. 조금 잘하면 추켜 세우고 지면 난리이다. 우리는 빨리 끓고 빨리 식는다. 나 역시 미국이나 쿠바 전을 보면서 얼마나 흥분을 했던가! 98 프랑스 월드컵 때 얼마나 하석주를 원망 했었던가? 그러던 한국이 어제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의 졸전을 만회하려는 듯 열심히 싸워 이겼다. 많이 듣는 말 골 결정력이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김으로서 모든 것이 커버는 안 되겠지만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3개월 된 도토리축구팀이 지난 일요일엔 먼저 치른 바 있는 신정 초등학교와 재 시합을 벌였다. 전반전엔 0대0 후반전에 두골을 먹고 두골을 넣었으나 오프사이드로 인해 노골로 인정 2대0으로 졌다. 홍원이는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용대 선수에게 개인 연습도 받았다. 슬기는 여자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이창명씨, 정용환 감독, 학부모, 그리고 자신만만한 얼굴의 도토리 축구팀. 모두가 열심히 갈고 닦은 보람이라라.
한국인이라면 월드컵 축구가 16강에 오르는 것이 염원일 것이다. 목표를 향해 조직위원회, 선수, 관중이 삼위일체가 되어 한 발만 더 뛰고 노력하고 아낀다면. 조금만 더 정진을 한다면, 그래서 어부가 만선이 되어 돌아 오듯이, 고행 끝에 핀 꽃이 만개가 되듯이, 대보름날 만월을 보며 소원을 빌 듯이 우리의 16강의 염원은 그 승리의 만끽을 전 국민이 함께 누리리라 생각해 본다. 삼개월 후에 일본에 건너가서 축구 경기를 할 도토리 축구단의 앞날은 그래서 밝기만 하다. 희망이 있기에 꿈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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